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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침을 꿀꺽 삼킨 히카루가 저를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볕으로부터 도망치기위해 다시금 몸을 반 바퀴 돌려 달려 나가려 할 때, 땀이 흠뻑 차오른 손에서 보랏빛 책이 떨어졌다. 당황한 히카루가 허공에서 추락하는 책을 잡기 위해 손을 뻗을 무렵, 그 기묘한 목소리가 다시금 히카루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저는 다시 한 번... 현세로 돌아갑니다-.]

 

 

하얗고 조그마한 소년의 손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닿는 순간 책에서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눈이 아릴 듯한 빛무리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뜬 소년의 눈에 도저히 현실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풍경이 두 눈에 들어왔다.

 

빛을 뿜어내던 책이 느릿하게 떨어지며 단단한 표지 사이에 감춰져 있던 내지가 파르륵 펼쳐졌다. 그리고 머지않아 책이 바닥과 닿는 둔탁한 소음이 히카루의 귓가를 두들겼다. 반사적으로 앞으로 내세웠던 팔을 굽혀 저를 보호하던 히카루는 슬쩍 팔을 내리곤 저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한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남자는 쏟아지는 빛에 흠뻑 젖은 새하얀 로브의 후드 자락을 조심스레 걷어 올렸다. 창문을 타고 넘실거리는 햇살과 그 주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황금빛 알갱이들 사이로 분홍 꽃잎이 우아하게 나풀거리다 남자의 하이얀 로브 자락을 쓸어내리며 비산했다. 발목을 덮을 정도로 긴 하얀 로브를 걸친 남자는 로브자락만큼이나 긴 보랏빛 머리칼을 늘어뜨리곤 입가에 그윽한 미소를 띠운 채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순백의 로브자락이 펄럭이며 부드러운 곡선을 허공에 그려나가자 그 안에 입은 짙은 보랏빛의 정장이 얼핏 드러났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남자의 눈동자가 파르라니 빛나며 커다랗게 뜨인 소년의 갈색 눈동자와 마주했을 때,

 

펼쳐진 책장 위로 남자의 발끝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바야흐로 새로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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