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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인지상의 자리란 불안정하고, 내 주위를 둘러싼 건 유일한 정적과 나를 물려 기다리는 혈통 좋은 개들. 빛 좋은 개의 털을 빗겨주며 미끼를 멀리 던져야만 살아남는 자리이다.

  차라리 거기까지였다면, 그녀는 살았을 터. 히카루는 제가 들은 저주란 너무 많아, 어쩌면 몇 천 번의 생을 반복할 동안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것이라 한탄하듯 가끔 말하곤 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내가 구해주겠다, 말했으나 그는 다만 웃으며 말하지 않았다.

    문제는 다음 말에 있었다.

  사냥이 끝난 후에 사냥개를 풀어두는 사냥꾼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언제 등 뒤로 달려들지 모르는 것을.

 

황  제는 대노하여 그녀의 목을 손수 베었다. 방금 전까지 들고 있던 찻물 위로 피가 튀어 섞였다. 시체의 사지를 참수하여 대로변에 목을 내걸었다. 까마귀가 머리를 쪼아 먹었다. 눈 번뜩이며 두개골을 쪼는 모습 섬뜩했다. 어째선지 흐릿하던 눈빛의 그녀가 떠올랐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이다.

  호의는 무엇이며, 동정과 연민의 차이는 뭘까.

  끝까지 히카루는 사냥개를 버리지 못했다. 아직 사냥이 끝나지 않았다는 변명 뒤로, 우습게도 목줄 채웠다. 사냥개는 언제 버려질지 알지 못해, 전전긍긍해했다. 그래도 목을 노릴 일은 없겠지.

  여전히 문은 소리 없이 열린다. 까마귀를 닮은 검은 정복을 입은 너는, 눈 마주치자 행복하게 웃었다.

  아키라는 책을 덮었다. 마주 웃었다.

  처음 만난 날, 너는 내게서 무엇을 보았을까.

  밤이면 널 원망하고 아침이면 다시 네게 복종한다. 여전히 네 개로 충성스럽게 혀를 빼물고 꼬리를 흔든다. 참으로 상냥하고 사려 깊은 사냥개가 아닌가.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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