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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말에 발을 구겨 넣었다. 근육과 살이라곤 다 빠져 볼품없이 메마른 다리를 바지로 감추었다. 시종이 솜씨 좋게 매만지자, 다리 윤곽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눈 먼 이의 손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외관상으로는 별 차이도 없어 보였다. 윤기 나는 남색 구두를 발 위로 씌우고 그대로 물러서, 부름을 기다리듯 잠자코 서있다.

  다정함이란 뭘까.

  아키라는 무의식적으로 일어서려다 멈칫했다. 이십 년간 몸에 배인 습관이란, 한 두 해 정도로는 사라지지 않았다. 창을 열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키며, 그가 올 때까지 단지 높고 휘황찬란한 궁들을 눈에 담던 시간들. 겨울은 메말라, 모든 나무 제 잎과 꽃을 꽁꽁 숨겨 그저 황량했다.

  다시 몸을 의자에 기대었다.

  상냥함이란 무엇이며 친절은 무엇일까.

  히카루가 올 때까지는 할 일이 딱히 없었다. 제가 일선에서 물러난 후로, 티 내지 않아도 할 일이 많을 테다. 저를 찾는 이들을 물리치는 것도 그 일에 포함되어 있겠지. 친구라 이름 지었던, 몇몇 이들의 얼굴이 어렴풋이 떠올랐으나 곧 흐릿하게 지워졌다. 어쩐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제 옆 테이블에 놓인 책을 집어 들었다. 단조로운 검은 하드커버의 감촉. 검은 양장본은 금서의 뜻이다. 제목도 적히지 않은 금서는 버젓이 황궁 안을 굴러다녔다.

별 생각 없이 중간 부분을 펼쳤다. 눈에 띈 부분을 소리 내어 읽었다.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대해주거나, 아니면 완전히 뭉개버려야 한다.

 

  옆의 시종이 움찔했다.

  이 책을 썼던 이가 누구더라,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흐르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듯 기억을 더듬어 올라갔다.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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