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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은 아늑한 심상의 계절. 어깨 위로 쌓이는 어둠은 고독이리라.

기억나지 않던 악몽은 밤이면 저를 찾아와, 억지로 눈 뜨게 만들었다. 제 뒤로 길게 늘어진 발자국. 이미 풍화되어 사라진 줄만 알았던 양심은 상처 입은 짐승마냥 울부짖고, 다리 없는 가족들이 제 팔을 잡아당겼다. 비틀거렸다. 마른 줄 알았던 눈물은 비처럼 내렸다.

  그리고 너.

  신록은 우거져 햇빛은 그 사이로 굴러 떨어지고, 발바닥에 와 닿는 땅의 온도는 봄.

아버지를 졸라 처음 가 본 황궁에서 만난 또래 아이. 아이는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몸. 제 몸보다 훨씬 큰 옷은 이리저리 찢어졌고, 그와 비슷하게 몸도 갈기갈기 찢어졌다. 엉성하게 지혈한 흔적 밑으로 말라붙은 피딱지. 생채기가 훈장처럼 온몸을 가로질렀다. 흰 피부가 더욱 도드라졌다.

  피칠을 한 게 조금 두려웠지만, 외양만으로 누군가를 판단하면 안 된다고 아버지도, 형도 그랬으니까. 다정하게 대해주자. 어쩌면 새 친구가 생길 지도 몰라. 그저 어리고 찬란하기만 했던 세계.

 

  어디 다친 거야? 아프겠다.

 

  약을 발라주고 싶었지만 손에는 아까 꺾은 페리윙클 몇 송이. 그래도 꽃을 보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남보라색 꽃을 조심스레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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