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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왜 그런 것 같아?”

 

차갑고 낮은 목소리. 지금까지 알던 고영하와 완전히 다른 이가 수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낯설다. 아까 보았던 모습이 이 사람의 단면이었던가. 수영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 낯선 뱀파이어에게서 도망쳐야 하는데, 도망갈 곳이 없었다. 영하의 눈이 둥글게 휘었다. 붉게 빛나는 눈에는 웃음기란 전혀 없었다. 그저 텅 비게, 아무것도 담지 않고 웃는 흉내만 내는 모습. 사람의 흉내를 내는 무엇.

 

“이러는 것도 얼마 안 남았겠지.”

 

수영의 몸이 굳어졌다. 두려움이 발끝에서부터 끈적하게 올라왔다. 집어삼켜진다, 생각이 든 순간 아키라가 음식을 들고 거실로 돌아왔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영하의 웃음에 평소 같은 천진함이 담겼다. 아까 사람 흉내를 내던 무언가는 깨끗하게 제 흔적을 지워버렸다. 영하는 주저앉은 수영을 일으켜 세웠다. 그저 수영이 실수로 넘어진 것처럼 자연스럽게. 수영은 자리에서 일어나마자 아키라의 곁으로 다가갔다. 멎었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자, 닭 먹으러 가자.”

 

대체 넌 누구야. 꺼낼 수 없는 질문이 음식과 함께 몸속에 쌓여갔다. 평화로워 보이는 식탁. 해가 짧아진 계절, 보름달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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