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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 훑어보던 책장을 지나쳐 다음 책장으로 넘어갈 즈음 히카루는 짙은 보랏빛으로 된 하드커버인 책을 책장에서 꺼내들었다. 사실 그 책은 히카루가 이 곳까지 오는 동안 보았던 책들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책등에 금박이 덧씌워진 유려한 필기체가 흐드러진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사람의 눈길을 확 잡아끄는 제목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책의 표지가 화려했다? 전혀. 오히려 책의 표지는 세월의 흐름에 몸을 맡긴 것 마냥 모서리가 둥글게 마모되었다. 그럼에도 이 책이 까다롭기 그지없는 소년의 눈에 든 연유는,

  

글쎄. 왜일까.

 

 히카루는 책을 책장에서 꺼내들어 표지를 조심스레 쓰다듬어보았다. 시간이 제 낡은 손으로 한번 훑고 지나간 듯 표지는 군데군데 흠집 난 곳도 다친 곳도 많았다. 그럼에도 히카루의 등 뒤에 있는 창문에서 비스듬히 밀려오는 햇살을 받은 표지는 은은한 보랏빛이 감돌며 빛바랜 따스함이 묻어났다. 환한 빛이 책 위로 쏟아지자 히카루의 눈에 표지의 오른쪽 아래에 선명한 검은 자국이 또렷이 박혔다. 검은 자국을 손으로 쓸어보아도 손끝에 묻어나는 건 그윽한 햇살의 숨결뿐이었다.

  

"...제목도 없는데."

"히카루? 찾았어? 그건 무슨 책이야?"

"나도 몰라."

  

히카루는 책을 휙휙 돌려 제목을 확인하고자 했지만 표지와 책등엔 당연히 있어야할 책의 제목이 없었다. ..잘못 골랐나.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표지를 넘긴 히카루는 손끝으로 책장을 파르르 튀겨보았다. 그리고 히카루는 세월에 누렇게 변색된 채 아무 것도 적힌 것 없는 텅 빈 종이들만이 가득한 걸 보곤 활짝 웃으며 책을 덮었다.

 

-이야, 시간낭비였네. 다음 책.

 

 

"뭐 건진 거라도 있어?"

"전혀. 이런 볼 것도 없고 표지에 얼룩진 책은 쓸모가 없었어."

"...얼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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